주정현

음악에서 작곡가와 연주자를 매개하거나, 기억을 돕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작곡의 방식이거나, 때로는 음악 그 자체가 되기도 하는 악보, 즉 스코어는 기보 체계를 이해하고 해독할 수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오랜 시간 점유되었다. 스코어를 수행하는 자는 긴 훈련을 거쳐 스코어 속 온갖 기호로 축약된 지시를 ‘정확하고 틀림없이’ 소리로 치환함으로써 스코어를 적은 자의 의도를 최대한 가감 없이 청자에게 전달하고, 청자는 스코어를 수행하는 자를 매개로 하여 해당 작품 또는 스코어를 적은 자의 의도를 ‘전달받게’ 된다. 전통적인 음악 연주의 상황에서는 스코어를 생산하는 자, 스코어를 수행하는 자, 스코어를 감상하는 자의 삼분법적인 구도가 연출되며, 서로의 고유한 영역을 착실히 이행할 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온다고 여겨진다.

「나이트 스코어(Night Score)」 시리즈의 일환으로 두 차례에 걸쳐 발표된 <흰 방과 두 명의 인간 그리고 심야를 위한 녹음> 그리고 <어두운 홀과 여러 겹의 꿈 그리고 사적인 밤을 위한 녹음>에서는 기존 스코어의 담론을 확장한다. 이 공연—또는 작업, 또는 인스톨레이션이라고도 칭할 수 있다. 이 공연을 어떤 용어로 칭하는지는 중요할 수도,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에서 스코어는 비결정적이고 유연하며, 관객이 적극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고, 자신의 음악(또는 청취 환경)을 구성할 수 있는 (또는 구성하지 않을 수 있는) 재료 또는 가이드를 제공하기도 한다. 관객은 공연장에 재생되고 있는 소리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자신이 공연장에서 어떤 행동들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공연이 끝난 후에 이를 다시 한번 소화하는 방법에 대해 가시적으로는 꽤 건조하게 적힌 종이 한 장을 ‘스코어’로서 제공받지만, 이 공연에서는 관객을 스코어에 적힌 텍스트를 읽고 속으로 이해하는 사람으로 대하기보다, 사실상 공연의 수행자performer이자 구성자composer로 초대한다. 실제 공연장의 소리 환경 역시 작가가 주목한 꿈의 상태처럼, 작가의 소리, 작가 주변의 소리, 관객 자신의 소리, 관객 자신의 주변의 소리가, 그리고 허구의 이야기와 현실의 대화가 위계 없이 중첩되어 있다.

작가가 공간 전체에 걸쳐 섬세하게 배열해놓은 소리의 위치와 방향과 음량, 의도를 가지고 디자인된 듯한 관객의 동선과 이에 수반되는 제법 제례적인 행동들—<어두운 홀과 여러 겹의 꿈 그리고 사적인 밤을 위한 녹음>에서 눈을 가리고, 계단을 올라가고, 안내에 따라 녹음하고 하는 등의 공연장 입장 전의 행동들. 마치 연주자가 연주 전에 옷을 갈아입고, 활에 송진을 바르고, 악기를 조율하고, 손을 풀고, 마음을 가다듬고 하는 일종의 의식을 연상케 한다—은 작품에서 전면에 드러나기보다 관객이 경험하는 시간 동안에 하나씩 하나씩 펼쳐지고 드러나며 쌓인다. 다른 사람의 꿈 이야기에 녹음기를 들고 다가가 혼자만의 헤드폰으로 감상하고, 잠들어 있는 퍼포머를 깨워 나의 꿈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고, 누군가가 꿈을 받아쓰는 순간의 기록 소리를 듣고, 공연장에 있는 피아노의 뚜껑을 열어서 연주하고, 물체가 진동하는 소리를 듣고, 나의 심장 박동이 주파수와 리듬으로 치환된 소리를 듣는 일련의 경험은 사적이지만 쌍방향적이며,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소리들은 비선형적이지만 분명 어떤 일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수집되고 놓여진 것들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같은 날 자정에 메시지의 형태로 수신된, 앞서 공연장에서 마주한 (혹은 마주했던 것만 같은) 소리들이 재구성된 사운드 파일을 듣고 있노라면, 정교하게 구성된 픽스드 미디어 곡을 듣는 것 같으면서도, 오후에 지나쳤던 희미한 소리들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다시 떠오르면서도, 아까 들었던 꿈의 이야기처럼 이 역시 금방 휘발될 것 같기도 하고, 이 내밀하고도 소란한 꿈의 조각들을 어떤 형태로든 붙잡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는 기억이 생성되고, 사라지고, 재구성되는 그 과정과 개념 자체가 이 오디오 메세지를 듣는 순간에 비유적으로 요약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이트 스코어」는 퍼포먼스나 이벤트를 위한 개념적인 틀을 제공하는 플럭서스의 스코어, 연주자에게 해석의 자유도를 부여하는 그래픽 스코어, 그리고 녹음된 소리의 물리적이고 단편적인 특질에 보다 집중하는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에서 다루었던 연주환경의 확장이나, 작가–수행자–청취자 간의 관계 재설정이나, 기술을 적용한 소리의 변형과 같은 논의보다는, 오히려 폴린 올리베로스(Pauline Oliveros, 1932–2016)가 제안한 ‘딥 리스닝(Deep Listening)’과 관련지어, 청취를 기반으로 한 ‘깊이 꿈꾸기’ 또는 ‘깊이 기억하기’를 시도하고 있는 듯했다. 비교적 친근한 ‘스코어’의 형태와 기능을 매개로 하여, 청취가 촉발할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을 실험해보는 것이다. 주어진 스코어가 안내하는 깊은 청취의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가까이서 녹음하며 듣게 되고,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놓게 되며, 나의 신체는 리듬으로 전환되고, 이 리듬을 기록하게 되며, 이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타인의 기록—이는 꿈에 대한 기록일 가능성이 크다—과 마주친다. 이 몰입된 청취의 상태는 특정한 (또는 특정하지 않은) 기억으로 연결, 번역되고, 작가의 목소리와 그의 환영幻影은 공간에서 가동되고 있는 음향 기계를 경유하여 관객에게 환영歡迎의 메시지를 건넨다.

사실 공간에서 일어나는 소리들은 가청주파수 너머에 있는, 어쩌면 인간 세상에서 사전적 의미의 ‘소리’로 취급될 수 없는 고음역의 사인파(24,000Hz)들이 감싸고 있었다. 기술의 힘으로 구현할 수는 있지만 아무리 증폭해 보아도,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들을 수 없는 소리. 기억해 내려고 애쓰지만 이미 휘발되어 없어진 꿈의 조각들.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복구해 낸 왜곡된 기억들.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바스락거리는 웅성거림. 그것을 들으려 애쓰고, 읽어내려 애쓰고, 기록하려 애쓰는 신체. 그 몸부림을 겪은 것만으로도 「나이트 스코어」의 지시를 충실하게 수행해 낸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