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연함이랄지 낭패감이랄지 이런저런 산만하고 부정적인 감정과 다투어가며 헐레벌떡 공연장에 다다랐을 때에는 이미 몹시 피로했다. 간신히 늦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주어진 과업은 밤을 꼬박 지새우며 펼쳐지는 이 수상하고 비밀스러운 공연을 잘 목격하는 일. 다섯 시간의 밤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힘을 미리 넉넉히 남겨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무렵의 나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게 매일 과로에 허덕이고 있었다. 세 탕의 일정을 소화하고 아슬아슬하게 열차를 놓친 뒤 10분 후에 온다는 막차를 기다리다가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사를 전속력으로 달려 택시를 탔다. 공연장에 도착할 때까지는 이 묘하고 별난 공연의 증언자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체력을 제대로 비축하지 못했다는 생각과 씨름하는 데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조금 더 썼다. 데스크에 휴대폰과 소지품과 신발을 맡기고 차가운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느끼며 공연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다섯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이 공연이 그런 관객을 가장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죽도록 피로하고 지독히 잠 못 이룬 관객 말이다.
관객들이 자그마한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저마다의 길목을 밝히며 하나둘 입장하고 있다. 그 손가락만한 손전등이 이곳의 티켓이다. 공간은 대체로 컴컴한 어둠에 잠겨 있으므로 모두가 모두에게 깜빡이는 불빛으로 존재한다. 한편, 이곳에 이미 자신의 방식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퍼포머들이 있다. 희고 커다란 침대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 내가 모르는 전선과 기기들 사이에서 사운드를 조율하는 사람, 노트북을 열고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타이핑하고 있는 사람, 엎드려 누운 채 극도로 미시적인 단위의 움직임을 수행하는 중인 사람, 공간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며 손전등을 비스듬히 기울여 그 각도에서만 보이는 숨겨진 문구들을 드러내는 사람… 그들 사이를 관객들이 더듬거리며 산책한다.
공간 전체에는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사운드가, 도저히 은은하다고 말할 수 없는 정도의 약간 큰 볼륨으로 흐르고 있다. 공간의 가장 존재감 있는 벽면으로는 콜드슬립의 전작 <이인환각연쇄고리>의 일부를 담은 푸티지가 프로젝션으로 커다랗게 투사되는 중이다. 천장에서부터 듬성듬성 드리운 아크릴판들은 공간의 희미한 불빛들을 반사하며, 사운드의 진동과 사람들의 기척으로 인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관객들은 어둠 속에서 불현듯 마주치는 다른 관객의 몸에 놀라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비연속적으로 출현하는 이 불투명한 아크릴벽과 그 벽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에 반드시 한번씩 걸음을 멈춰선다. 타인과 혹은 자신과 눈이 마주쳐 흠칫 놀란 이들이 이내 방향을 비틀어 관찰과 탐색의 몸짓을 이어나간다.
공간이 주는 긴장은 흥미로운 종류의 것이었으나 나는 전원이 꺼지기 직전의 기계다. 마지막 배터리가 찰칵 깎이는 것을 느낀다. 한쪽 구석에 무더기로 쌓여 있는 베개 더미로 홀린 듯 이끌려 걸어가서 풀썩 쓰러진다. 체면이고 나발이고 모르겠다. 가장 먼저 신속하고 망연자실하게 피로에 굴복하는 관객 축에 속하기로 한다. 긴 공연 시간에 의지하여 관람을 뒤로 미룬다. 반복재생되는 프로젝션 영상 속에서는 <이인환각연쇄고리>의 관객들이 저마다 흥얼거렸던 자장가가 흘러나와 유령처럼 공간을 서성이고 있다. 낯선 사람들이 부른 자장가를 들으며, 나를 지나쳐 걷는 관객들의 발걸음을 느끼며 한동안 나는 베개들 위에 엎어져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공간을 거니는 사람들의 걸음이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한다. 눈을 몇 차례 감았다 뜨는 사이마다 사람들이 조금씩 더 앉거나 눕는 것 같다. 비몽사몽하는 사이 슬몃 잠이 다녀간다.
눈이 부시다. 누군가의 동그란 손전등 불빛이 내 주변을 비추고 있다. 그는 내 옆에 떨어진 메모장을 — 내가 이 공간에 머무르며 드문드문 적어둔 상념들을 — 주의깊게 읽고 있다. 조금 창피하다.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메모장을 배밑으로 끌어당기며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베개를 끌어안은 채 어디론가에 기대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 다리를 끌어와 몸을 말며 일어나 앉자 곁에 있던 누군가가 내가 쓰던 베개를 슬쩍 집어간다. 문득 내가 너무 많은 베개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의식된다.
그와중에 곰인지 고양이인지 모르겠는 동물옷을 입은 사람이 탈을 쓴 채 잠시 공간을 느릿느릿 가로질러가고 있다. 그의 뒤를 흰 옷을 입고 베개를 껴안은 몇 명의 사람들이 뒤따르며 천천한 행진을 이어간다. 늘어지고 혼미해진 의식 가운데에서도 그 풍경은 꿈의 형상으로 받아들이기에 어쩐지 조금 이질적이어서 오히려 잠이 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조그만 언덕을 이루고 있던 베개들은 이제 이 공간 곳곳에 비교적 분포되어 있다. 사람들은 베개 위에 앉거나 눕는 방식으로 혹은 베개에 기대거나 껴안는 방식으로, 잠을 위해 마련된 이 최소한의 사물과 관계하고 있다. 이토록 풀어지고 자유스러운 관객의 상태를 이전에 보지 못했다는 생각과 이토록 심드렁하고 잠에 겨운 관객들을 본 일이 없다는 생각이 서로 자리를 다툰다. 자신의 꿈에도 타인의 꿈에도 진입하지 못한 이들이 나름의 공간을 찾아내고 차지한 후 누워 시간과 공간과 타인을 견디는 각기의 방식을 탐구하며 허물어지고 풀어헤쳐지고 있다. 표정을 잠그고 바깥으로 열린 몸의 문들을 닫아걸기 시작한 그들을, 그럼에도 몸의 틈새로 점차 감정과 마음이 불쑥 비져나오는 것을 구경한다. 내 몸과 마음도 그들이 보기에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편 공연은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미약하고 섬세한 변화를 더해가며 점점 처음과는 무척 다른 것이 되어가는 중이다.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도구가 수중에 없었으므로 공연이 얼마쯤 왔는지 가늠할 수는 없으나, 분명 한때 자장가였던 소리는 어느새 기관총 소리에 가까운 무엇인가로 변해가고 있다. 제아무리 깊은 잠을 자는 이라도 깨지 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총성을 연상시키는 높고도 둔중한 타격음이 고르게 귓전을 때린다. 공연은 무심하고 성실하게 점점 더 포악스럽고 흉포해져 간다. 이윽고 사운드를 조율하던 퍼포머가 별안간 바이올린을 꺼내 무시무시하게 증폭된 음량의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하면 자극의 강도는 정점에 이른다. 바이올린은 연주된다기보다 폭행된다. 바닥에 끌리고, 흠씬 두드려맞고, 현이 뜯어지면서 소리가 난다. 관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미세하게 반응한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고쳐 앉고 돌아눕고 다른 자리를 찾아나선다. 시시각각 난자되고 저며지는 각자의 귀를 어쩌지도 못한 채 몸들이 조금씩 더 옹송그린다.
찢어지는 파열음 속을 걸어다닌다. 조금 피로한 얼굴로 악기를 켜고 있는 — 부수고 있는 — 바이올리니스트를 가까이서 관람한다. 그에게 잠시 활과 바이올린을 건네받아 연주에 동참하기도 한다. 내 손으로 넘어온 바이올린은 이미 상당히 망가져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활로 현을 긁어보고 두들겨도 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견고한 사물이다. 이 단단한 악기가 더 많이 부서지고 흩어져 자신의 몸을 거의 잃어버릴 때까지 공연이 이어질 것이다.
무선 프린터에서 인쇄된 종이들이 한쪽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다. 공간 곳곳에 앉은 세 명의 타이피스트들이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실시간으로 작성한 것들이다. 몇몇 이들이 모여앉아 손전등 불빛을 비추어가며 인쇄물들을 나누어 읽고 있다.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누군가 제각기의 방식으로 기록하거나 보도하거나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은 베개를 베는 만큼의 작은 의지가 된다. 안쪽에서부터 걸어잠긴 것 같은 얼굴 안에 모종의 감정과 생각이 출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이 공간 속에서 내가 감각하고 느끼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이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그러나 그보다도 더 마음이 갔던 것은 관객이 직접 남긴 메모다. 나는 또다른 구석에 설치된 책상 위에 어떤 관객이 이런 메모를 휘갈겨둔 것을 발견한다. 저건 대체 언제 끝날까요? 바이올린을 부숴버리고 싶어요. 쿠데타를 일으켜서라도… 나는 그만 소리내서 웃고 만다.
이제는 망명자나 부랑자를 닮아가는 관객들을 바라보며 궁금해 한다. 단호하게 몸을 닫아건 저 이들 중에서 쿠데타를 꿈꾸는 자는 누구였을까? 베개를 껴안고 자리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잠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고 있는 이들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떠나지 않는 그들을 궁금해한다. 지쳤다면 그냥 나가거나 돌아갈 수도 있다. 이쯤에서 그만 관객의 일을 그만둘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 견디고 있다. 무엇을 위해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 공연이 관객 중 어떤 이들을 진실로 분노케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는 어떨까?
나는 이 공연이 실로 끔찍했고 바로 그 점이 좋았다.
어떤 이들은 극장이 꿈을 만들어내는 곳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모여서 함께 좋은 꿈을 꾸고 서로를 조금 좋아하게 된 뒤 헤어지게 되는 곳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부터 내심 극장이 나를 상처입히기를 바라왔던 것 같다. 나를 가차없이 뭉개버리기를, 유효한 타격을 연사하기를,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손상을 주기를 바라왔던 것 같다. 극장이 이렇게나 정교하고 집요하게 누군가를 못살게 굴지 않으면, 재난과 재앙의 차원으로 괴롭히지 않으면, 바이올린을 빼앗아 부숴버리고 혁명을 일으키고 싶어질 만큼의 악몽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언젠가부터 느껴왔던 것이다.